국내 최초 빠알리어 대장경 번역
"붓다의 살아있는 목소리 전하고파"
『빠알리어 경전 번역작업을 통해 석가모니 부처가 실제로 어떤 곳에서 살았고 무엇을 느끼고 깨달았는지 생생하게 전달하고 싶었습니다』
최근 빠알리어(석가모니 생존당시 민중언어) 대장경의 하나인 맛지마니까야(전5권. 중간길이의 설법모음)를 현대어로 완역한 한국빠알리성전협회 全在星(79년 農大卒)회장. 쌍윳타니까야(전11권. 짧은길이의 설법모음) 완역에 이은 두 번째 결실이다.
인도철학회 회장을 지낸 원희범씨는 맛지마니까야 완역를 두고 『우리 나라 불교 1천6백년사에서 가장 중요한 작업』이라고 평했다. 학술원은 맛지마니까야의 인문학적 성과를 높이 평가해 역경으로는 유일하게 2003년 우수학술도서에 선정하기도 했다.
성철스님은 중국어를 이중번역한 불교경전이 아니라 초기불교 용어인 산스크리트어와 빠알리어 경전을 직접 번역한 경전을 가질 때 한국불교가 한 단계 도약할 수 있다고 설파한 바 있다. 全동문은 『표음문자인 빠알리어를 표의문자인 한문으로 번역하는 데는 한계가 명확하고 한문의 경우 논리적 축약도 심해 부처님의 가르침을 제대로 전할 수 없다』며 『한문으로 번역하는 과정에서 가르침 자체가 왜곡되거나 오히려 더 난해해진 경우가 많았다』고 지적했다.
全동문은 학부시절 농화학을 전공하면서도 대학생불교연합회에서 활동하며 이미 불교와 깊은 인연을 맺고 있었다. 하지만 졸업 후에도 불교와 관련된 일을 할 줄은 몰랐다고. 학부시절 학생운동에 가담하면서 잦은 연행과 감시에 시달렸다. 그 결과 몸과 마음이 망가질 때로 망가져 사회진출은 불가능했고 점점 더 불교에 의지하게 됐다고 한다. 『그 당시엔 하루에도 몇 번씩 죽음을 생각했어요. 폐결핵 3기 판정을 받고, 경찰에게 쫓기는 악몽이 매일 반복되던 때였으니까요. 그 고통을 떨치기 위해 명상에 전념하다 어느 순간 깨달음이라고나 할까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독특한 체험을 하게 됐습니다』
그후 어렵게 독일로 유학을 떠나게 되고 그곳에서 삶의 전환점을 맞이한다. 최근 내한하여 언론의 주목을 받았던 거지성자 페터 보이야르를 만나게 된 것이다. 『첫눈에 남루했지만 범상치 않은 분위기를 느꼈어요. 흡사 예수님을 보는 것 같았죠. 썩은 당근을 깎아 먹고 있던 그에게 부처를 아느냐고 물었더니 「나도 붓다처럼 아나가리카(집없는 출가 수행자)로 살고 있다」고 답하더군요』 그 이후 지금까지 25년간 그와 인연을 이어 오고 있다고.(그에 대한 이야기는 한때 베스트셀러였던 「거지성자」에 잘 나와 있다)
全동문은 앞으로 나머지 빠알리어 대장경 번역을 계속해 나갈 계획이다. 『한국인 정서 속에 불교가 자리잡고 있다는 것은 아무도 부인할 수 없을 겁니다. 그러나 이에 대한 학문적 연구는 소홀한 것 같아요. 모교를 비롯한 국립대에서 이에 대한 연구가 활발히 이루어졌으면 합니다. 뜻 있는 동문들의 목소리가 절실한 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