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南漢山城 守禦將臺

최영일 2008.06.28 09:43 조회 수 : 859 추천:56










~ ~ 守禦將臺 ~ ~

1972년 5월 4일 경기도유형문화재 제1호로 지정되었다.
크기는 1층 면적 105.08㎡, 2층 면적 43.29㎡이다.
1624년(인조 2) 남한산성을 축조할 때 지은 4개의 수어장대
가운데 유일하게 남아 있는 중요한 건물이며,
수어청의 장관(將官)들이 군사를 지휘하던 곳이다.
기둥은 모두 민흘림 둥근 기둥이고,
1층은 초익공, 2층은 2익공으로 되어 있다.
가구(架構)는 5량가(五樑架)로서 고주(高柱) 위에
대들보를 건너지르고 그 위에 동자기둥을 세워 마루보를 받쳤다.
위층으로 오르는 계단은 아래층 내진의 북동쪽 칸에 설치되어 있으며,
바깥 정면에 ‘守禦將臺’라고 쓴 현판이 걸려 있고,
안쪽에는 ‘무망루(無忘樓)’라고 쓴 현판이 걸려 있다.


~ ~ 南漢山城 ~ ~

경기도 광주시 중부면(中部面) 산성리(山城里) 남한산에 있는 조선시대의 산성.
1963년 1월 21일 사적 제57호로 지정되었다.
북한산성(北漢山城)과 더불어 서울을 남북으로 지키는 산성 중의 하나로,
신라 문무왕(文武王) 때 쌓은 주장성(晝長城)의
옛터를 활용하여 1624년(인조 2)에 축성(築城)하였다.

《남한지(南漢志)》에 따르면, 원래 심기원(沈器遠)이 축성을 맡았으나
그의 부친상으로 인하여 이서(李曙)가 총융사(摠戎使)가 되어
공사를 시작하여, 1626년 7월에 끝마쳤다.
공사의 부역(賦役)은 주로 승려가 맡아 하였다... (중략)
결국 막대한 비용과 노력을 들여서 쌓은 성이었으나
제구실을 하지 못한 뼈아픈 역사(役事)였다.
남한산성은 백제의 시조인 온조왕(溫祚王)의 성터였다고도 한다.




03. 신익희 선생 동상










물봉선



누운괴불주머니




싸리꽃

지다 남은 꽃은
들판에 피어난
요염한 첫 꽃보다 더 사랑스러워라
그것은 더욱더 애절한 그리움을
우리 가슴에 안겨 주는 거

아, 그와도 같이 헤어질 땐
만날 때보다 더욱더
몸에 저려드는 것을....
이 시는 러시아의 시인
푸쉬킨(Pushkin)의 <지다 남은꽃>이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