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農學과 農大가 갈 길은 ? ( 1 )

운영자 2007.06.04 14:26 조회 수 : 1267 추천:123


최영일 (2004-06-03 07:44:22, Hit : 85, Vote : 30)  

http://myhome.hanafos.com/~cyu29



第 4 章  農學과 農大가 갈 길은?


1. 農學과 農大가 갈 길은?


<筆者의 註> <옮긴이의 註> 여기서 筆者는 李春寧 은사님.

筆者가 水原高農 在學 時 校友會誌에 짧은 作文을 投稿한 적이 있는

데 그 內容인즉『우리는 大地에서 와 大地 위에서 자라 大地로 돌아

간다.

   이 自然의 法則에 順應하는 우리 農學 徒는 大地의 품안에 안기어

푸근한 비호 속에서 雜 踏한 俗世의 愚人들이 모르는 喜悅을 느끼며

生活한다.

   우리는 룻소 의 「自然으로 돌아가라」는 외침을 바로 여기

서 찾아야 한다.』는 要旨다.

   지금 생각하면 너무나 순진하고 로맨틱한

思考였다고 웃음이 난다.

    刻薄한 요즈음, 말이「農」이지 그 苦生스럽고 수고덩어리인 이「業」

  을 어찌 理想化하여 자랑스럽고 聖스러운 것이라고 敢히 생각할 수 있

  느냐 고 반박이 나올 판이다.

    이러한 苦役의 農業을 뒷받침할 農學을 志願한 諸 學生들이 비록 잠시나마

  一種의 회의에 젖을 것으로 可히 짐작이  간다.

    우리 나라에서는, 특히 近世 (李氏 朝鮮) 에 들어와 農을 賤職으로 여기는

  경향이 생겼다.

    하기야 逃避나 隱退의 방도로 農을 선택하고 우선 最小

  限의 食生活解決의 근거로 삼아 「歸 去來」를 읊는 高級人士가 때때로

  있었으나, 實地로 大部分의 農夫는 收奪의 對象으로 어수룩하고 순진한

  愚夫대접을 甘受하여야 하였다.

    매 마른 땅에서 掠奪 式 農業技術과 營農法으로 겨우 거두어들인 生産物은

腐吏의 奸巧한 收集에 희생되었고, 農夫들은 빈손을 툭툭 털어야 할 판이었다.

    일찍이 (1778 年?) 朴 齊家는 「北學 議」에서 이렇게 외쳤다.

    『大小科擧 (三年 마다의) 에 十萬이 應試하되 농사를 하지 않을 뿐 아니라

  모두 農民을 부리고 있으니 소위 선비를 줄여야 하겠습니다.』

    이것은 當時 國內의 實學派 先覺學者의 共通된 意見이었다.

    租稅收集 과 富貴 者의 徵收對象인 農業은 오로지 農民의 酷使를 통하여 遂行됫스며,

實質로 腐儒 登用의 길로 化한 科擧에서 遊食 輩들만 늘어갔던 것이

李朝後期에 우리 農業이 衰退한 原因의 하나가 되었다.

    遊食 者의 農民 化,  卽 農業 勢動 源과 營農 者의 增加를 强調하게 되었음은

당연하다고 보겠다.


                                               (다음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