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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삶의 원동력은 호기심… 89세인 지금도 낯선 곳으로 홀로 여행”
식품영양학 권위자 유태종 前 고려대 교수  



▲  국내 식품영양학 최고 권위자인 유태종 곡천건강장수연구소장이 소식과 균형식, 침대운동 등 현대인을 위한 장수 생활습관을 설명하면서 환하게 웃고 있다. 김연수기자 nyskim@munhwa.com



중국의 시안(西安)국제공항 입국장으로 노년의 신사가 걸어 나왔다. 중절모를 눌러쓴 그는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2011년 9월, 노신사의 나이는 88세였다. 동반자는 물론 마중나온 지인도 없었다. 비행기표도 혼자 예약을 했고 호텔도 직접 잡았다. 그는 안내 데스크로 곧장 다가가 오늘 밤 묵을 호텔이 어디인지 어떻게 가야 하는지 물었다. 중국어를 몰라 종이에 한자를 써서 뜻을 전했다. 고령인지라 손이 조금은 떨렸다. 이름은 유태종, 전 고려대 식품공학과 교수다. 유 박사는 우리나라 식품영양학의 최고 권위자이자 원로다. ‘음식궁합’을 비롯해 ‘식품동의보감’, ‘음식족보’, ‘먹어서 약이 되는 생활음식 100가지’, ‘항암식품 77가지’ 등 수많은 식품건강 베스트셀러의 저자다. 지금도 곡천건강장수연구소장으로 활발한 연구활동을 하고 있다. 14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동 자택에서 유 소장을 만났다.

―대단하십니다. 1924년생이시죠.

“아이고 뭐 그 정도 가지고요. 낯선 곳에 혼자 떨어져 어디를 갈까 고민하고, 이곳 사람들이 즐겨 먹는 음식은 무엇이고 건강과 어떤 연관이 있는지를 취재하다 보면 비로소 ‘살아 있다’는 느낌이 들지요. 처음 가 보는 도시가 주는 적당한 두려움과 호기심 그리고 적당한 스트레스, 이 같은 것들을 해결했을 때의 기쁨은 이루 말할 수가 없지요. 시안에서는 서태후가 즐겨 먹었다는 소 인후(咽喉)찜을 맛보았지요. 목소리에 좋다고 하는데 근거는 없고 호기심 만족 차원이지요. 호기심은 내 삶의 원동력입니다. 혼자 여행을 떠나는 것도 같은 이유입니다. 늙은 배낭여행족이라고나 할까요. 지난해 5월에는 일본 규슈(九州)에도 다녀왔지요. 다음에는 뉴욕을 가볼까 해요.”

―요즘도 집필활동을 하시나요.

“매일 오전에 30분, 오후에 30분씩 책을 쓰고 있습니다. 책의 제목은 ‘99~88 생활습관’인데 거의 마무리 단계입니다. 무병장수를 위한 생각과 행동, 음식에 대한 책이지요. 아직 큰 병을 앓아본 적이 없습니다. 노인들이 치매 걱정을 많이 하는데 치매에 특별히 좋은 음식이 있다기보다는 생각과 행동이 중요합니다. 지금 내가 89세인데 99세까지 살아서 책의 이론을 몸으로 입증할 생각입니다. 99세가 되면 다시 인터뷰를 할 테니 찾아와 확인해 봐요.”

―현대인들이 건강하게 살려면 어떤 음식을 먹어야 하나요.

“특별한 음식 한두 가지를 먹고 건강해졌다고 여기는 것은 정말 문자 그대로 어불성설입니다. 무엇보다 편식하지 않고 골고루 먹는 균형식이 중요합니다. 몸에서 원하는 음식을 먹어야 하지요. 그래야 보양이 됩니다. 임산부가 왜 신맛이 나는 음식이 당기는지 아세요? 태아는 뼈를 만들어야 하는데, 이때 골격 형성에 필요한 칼슘의 흡수를 도와주는 성분이 유기산입니다. 그래서 임산부들이 신맛 나는 음식이 먹고 싶은 것이지요. 바로 몸에서 그 음식이 필요하다는 신호인 셈입니다. 인체는 오묘하지요.”

―그래도 특별히 몸에 좋은 음식이 있지 않나요.

“지네는 관절에 좋고, 동물의 위를 먹으면 소화가 잘되고, 이렇다 저렇다 하는데 쓸데없는 대물요법입니다. 아무런 효과도 근거도 없는 얘기입니다. 생활에서 간단한 원칙만 지키면 장수를 할 수 있습니다. 먼저 과음하지 않고 담배를 피우지 않는 것은 기본입니다. 여기에 채소 과일류 3과 단백질류 1의 비율로 먹는 성분을 조절해야 합니다. 단백질은 동물성과 식물성이 있는데 다시 이를 1대 1의 비율로 조절합니다. 아침식사 후에는 종합비타민과 아스피린, 과일, 유산균 음료를 먹지요. 여기에 짜고 맵게 먹지 않으면 대부분 100세까지는 문제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저서를 보니 침대운동을 상당히 강조하시던데요.

“아침에 일어나면 먼저 누워서 무릎을 좌우로 흔듭니다. 두 팔을 뻗어 관절운동에 들어가지요. 다음에 발을 들어올려 곧게 펴고 심호흡을 크게 합니다. 팔을 수영하듯 옆으로 돌리고 고무줄을 이용해 발과 팔 당기기를 하지요. 이 같은 순서로 침대운동을 하면 30~40분이 금방 지나가지요. 현재 체중이 69㎏입니다. 몇 달 전 1㎏ 정도 체중이 불어 운동으로 1㎏을 줄였어요.”

―외출은 자주 하시나요.

“물론이지요. 외출할 때 반드시 챙겨야 할 것이 있습니다. 간단한 유머지요. 은행에 가면 출납원들에게 들려주고, 상점에 가면 주인에게도 전해 주지요. 그들이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면 나까지 덩달아 신이 납니다. 인도를 걷거나 전철을 탈 때는 소리내지 않게 숫자를 세지요. 계단이 몇 개인지 궁금해하면서 세어 보는 것도 좋습니다. 두뇌활동을 계속해야 치매에 걸리지 않고 몸이 건강해집니다.”

―곡천건강장수연구소는 어떻게 운영하시나요.

“예전에는 서울 영등포구 여의동 고려빌딩에 연구소가 있었는데 집에 남는 방도 많아서 그 공간을 활용합니다. 사람들이 하도 노인거주시설이 좋다길래 그곳에서도 몇 년 살아 봤지요. 식사 세끼 주고 노래방, 당구장, 도서관은 물론 헬스와 의료시설도 있어 환경 자체는 훌륭했지요. 노래방 애창곡이 ‘바위고개’였습니다. 새로운 사람들을 사귀는 재미도 있고, 다 좋은데 한 가지가 걸리더라고요. 매일 접하는 사람들이 노인들이다 보니 갈수록 더 늙어지는 것 같습디다. 안 되겠다 싶어 여의동으로 다시 돌아왔지요.”

―한국 사람들의 성정이 급하다고 하던데, 장수에 영향이 있을까요.

“독일 마인츠대에서 교환교수로 있을 때였어요. 사람들이 식당에서 줄서는 것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더라고요. 우리나라 사람 같으면 4~5분도 기다리지 못하고 다른 곳으로 갔을 겁니다. 손님이 식사가 끝나고 테이블에서 계속 얘기를 나눠도 눈치 주는 주인이 없어요. 먹는 속도와 분위기가 장수에는 아주 중요합니다. 예전에 쥐를 대상으로 실험을 했습니다. 100마리의 쥐를 A와 B집단으로 나누고, A집단에는 먹이를 주면서 양철통을 두드리는 소음을 반복적으로 들려주었어요. 먹는 시간도 짧게 하면서 불안감을 조성했지요. 반면에 B집단에는 클래식 음악을 들려주면서 먹이를 천천히 먹도록 했어요. 실험 결과 A집단 쥐들의 수명이 B집단보다 평균 30% 정도 짧았지요. 마찬가지입니다. 불안하게 쫓기면서 식사하면 수명이 줄어들어요.”

―1992년 발행된 ‘음식궁합’은 지금도 스테디셀러입니다. 일본에서도 절찬리에 판매됐는데 연구하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사찰음식을 연구할 때였지요. 절에서는 고기를 먹지 않는데 무병장수하는 스님들이 많아 이상했습니다. 스님들은 인체에 필요한 단백질을 고기 대신 콩에서 공급받는데, 많이 섭취하면 몸에서 요오드가 빠져나갑니다. 요오드가 있어야 만들어지는 갑상선 호르몬인 티록신(thyroxine) 분비가 줄어 몸에 이상이 생길 수밖에 없는데도 스님들은 건강하니 이해가 되지 않더라고요. 결국 해답은 음식에 있었지요. 절에서는 튀각이나 김, 톳 등을 많이 먹는데 여기에 요오드가 다량으로 함유돼 있었습니다. 결국 음식들이 상호보완 작용을 한다는 결론에 도달했지요. 그래서 만든 말과 이론이 음식궁합입니다.”

―원래 식품영양학이 전공이었나요.

“서울대 농화학과를 1952년에 졸업했습니다. 식품, 비료, 양조를 아우르는 학문인데 모든 일에는 예방이 중요하다는 생각에서 식품을 전공으로 정했습니다. 원래는 문학도였어요. 일본의 유명한 작가인 미야자와 겐치(宮澤賢治)의 영향도 컸지요. 농업화학을 전공한 문인이었어요. 그래서 농화학을 하면서 문학의 길을 걸으려고 했는데 여기까지 왔네요. 지금도 문학을 생각하면 가슴이 설렙니다.”

―학창시절에 한국전쟁을 겪으셨겠네요.

“박목월 선생이 막내 고모부입니다. 한국전쟁 때 종군문인단으로 전선을 돌아다녔지요. 김동리 선생도 함께 계셨어요. 지금 생각하면 정말 아찔해요. 강원 진부 부근에서 전사(戰史) 집필작업을 마치고 행군하는데 하늘에 전투기가 나타났지요. 누군가 ‘미군기다’ 소리치길래 걱정없이 길을 가는데 총알이 두 줄로 쏟아졌죠. 50㎝ 정도 비켜갔을까. 알고 보니 미군이 우리를 북한군으로 잘못 알고 사격을 했더라고요. 그때 죽을 고비를 한번 넘겼지요.”

―전세계 장수촌을 두루 돌아다니면서 연구를 했는데 특별한 비결을 찾으셨나요.

“세계 3대 장수촌인 파키스탄 훈자, 에콰도르의 빌카밤바, 러시아 코카서스는 물론이고 장수촌으로 소문난 곳은 거의 방문했습니다. 1973년 코카서스 아제르바이잔에 살았던 시라리 미스리모프가 세상을 떠났을 때 나이가 168세였습니다. 장수비결이라고 할 만한 그곳만의 특별한 음식은 발견할 수 없었어요. 하지만 다른 장수촌과의 공통점은 찾았지요. 장수촌 사람들은 요구르트 같은 발효유 제품을 많이 섭취했어요. 신맛이 강한 과일과 차를 즐겨 마시는 것도 특징이지요. 음식량은 소량이었고, 모두 음악과 무용을 즐기고 늙어서도 일을 하며 낙천적으로 산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었어요.”

―건강전도사로 알려지면서 돈의 유혹도 있었을 듯합니다.

“허허, 얘기할 거리도 아닌데요. 제약회사와 건강식품회사에서 돈을 싸들고 찾아오더군요. 사진 한 번만 찍으면 거액을 주겠다고 하던데 모두 거절했지요. 돈을 욕심내는 순간, 식탐을 비롯한 온갖 탐욕이 찾아오고 건강도 무너집니다. 사실 과식은 건강에 최대의 적입니다. 30대 식사 칼로리를 100으로 한다면 70대는 70으로 줄여야 합니다.”

인터뷰를 마칠 시간이 다가와 허리를 굽혀 인사를 했다. “왜 가려고?” 노신사의 물음에 공손히 답하려는데 “애써 여기까지 왔으니 유머 한자락 듣고 가요”라는 말이 돌아온다. “글쎄, 맹구란 녀석이 수업시간에 매일 졸아요. 보다 못한 선생님이 ‘너 커서 뭐가 되려고 그래’라고 크게 야단을 쳤지요. 맹구가 뭐라고 했는지 알아요. ‘선생님이 시키신 대로 하는 중인데요’라고 했지요. 머리 끝까지 화가 난 선생님이 ‘뭐라고’라고 소리치자 맹구 왈, ‘항상 꿈을 꾸라고 그러셨잖아요’라고 말했답니다. 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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